참나의 뜻을 따르는 삶

참나의 뜻을 따르는 삶

윤홍식

 

 

참나는 초월적 경영자다.

참나는 나와 남의 구별이 없다.

참나는 조화롭다.

참나는 자명하다.

참나는 성실하다.

 

 

1. 참나는 초월적 경영자다.

 

참나는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계의 존재이자, 모든 현상계의 뿌리이다. 통 밖에서만 통을 굴릴 수 있다. 현상계를 초월한 자리만이 현상계를 굴릴 수 있다. 현상계의 자아인 ‘에고’도 절대계의 자아인 ‘참나’만이 경영할 수 있다. 이 근원적 참나의 주재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각, 감정, 언행을 경영할 수 없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절대계에서와 같이 현상계에서도 참나의 뜻이 온전히 펼쳐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참나의 입장에 서서 늘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깨어있음敬,선정 바라밀). 가정과 사회, 지구와 전 우주의 현상계에서 늘 초연하게 살아가며 중심을 잡고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참나의 뜻’이다.

 

2. 참나는 나와 남의 구별이 없다.

 

참나에는 나와 남이 없기에, 현상계의 존재들 또한 본래 하나이다. 본래 하나이기에 서로의 처지를 역지사지할 수 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에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로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며(사랑仁),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정의義).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생각ㆍ감정ㆍ행위는 참나의 뜻에 배치된다. 그것은 에고의 뜻일 뿐이다. 우리는 현상계에서 참나의 뜻을 존중하여, 늘 남이 원하는 것을 베풀어야 하며(보시 바라밀), 남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지계 바라밀). 이 ‘사랑의 바라밀’과 ‘정의의 바라밀’을 내 마음에서부터 실천하여, 가정과 사회는 물론 지구와 온 우주가 사랑과 정의로 충만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참나의 뜻’이다.

 

 

3. 참나는 조화롭다.

 

참나 안에서는 어떠한 무질서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에고도 남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언행은 늘 상대방에게 겸손하여 무례하지 않아야 한다(예절禮). 나의 무례함은 전체의 조화를 깨뜨린다. 이것은 참나의 뜻이 아니다. 오직 에고의 뜻이다. 우리는 현상계에서 참나의 뜻을 존중하여,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인욕 바라밀). 이 ‘예절의 바라밀’을 내 마음에서부터 실천하여,가정과 사회는 물론 지구와 온 우주가 질서와 조화로 충만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참나의 뜻’이다.

 

4. 참나는 자명하다.

 

온 우주는 참나 자신의 일이 아님이 없다. 참나는 오직 참나 자신만을 인식하기에 늘 자명하다. 온 우주의 작용은 참나에 뿌리를 두기에, 모든 정보는 참나에게 드러나 있다. 그러니 참나는 늘 자명하고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정보에 무지하여 의심하고 찜찜해하는 것은 에고의 입장일 뿐이다. 우리는 현상계에서 참나의 뜻을 존중하여, 늘 자명함을 추구하고 찜찜함을 제거해야 한다(지혜智반야 바라밀). 이 ‘지혜의 바라밀’로 모든 것을 자명하게 밝혀냄을 내 마음에서부터 실천하여, 가정과 사회는 물론 지구와 온 우주가 진리와 지혜로 충만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참나의 뜻’이다.

 

5. 참나는 성실하다.

 

참나는 나태하지 않다. 참나는 잠시도 쉼이 없는 자리이다. 참나는 온 우주를 굴리고도 힘들어 하지 않는다. 참나는 결코 수고로워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힘들어 하고 수고로워하며 나태한 것은 에고의 뜻일 뿐이다. 우리는 현상계에서 참나의 뜻을 존중하여, 언제 어디서나 쉬지 않고 정진해야 한다(성실信,정진 바라밀). 이 ‘성실의 바라밀’을 내 마음에서부터 실천하여, 가정과 사회는 물론 지구와 온 우주가 성실과 정진으로 충만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참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