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바라밀을 닦아야 하는 이유

6바라밀을 닦아야 하는 이유

윤홍식

 

6바라밀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자는 것도

에고를 닦아서 이루는 것이요,
모른다는 통해 침묵으로 들어가는 것도

에고를 닦아서 이루는 것입니다.

 

전자는 6바라밀을 전체적으로 닦는 것이며
후자는 선정바라밀을 주로 닦는 것일 뿐입니다.

모두 에고를 닦아야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른다!" 즉 선정 바라밀을 연습하시듯이,

다른 바라밀도 연습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보시, 지계, 인욕의 성취나 선정의 성취나 
모두 에고가 바라밀의 닦음을 통해 얻은 성취일 뿐입니다.

 

우리 참나에겐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본래 있지만
참나는 에고를 통해서만 그 작용을 드러내기에,
에고를 올바른 방법으로 닦아야만 선정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고,
보시도, 지계도 인욕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고가 각종 바라밀을 성공적으로 닦을수록
자연스러운 결과물의 성취가 이어지게 됩니다.
즉 애쓰지 않고도 그 상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참나는 본래 고요하나
우리가 선정 바라밀을 닦아야만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시와 지계의 능력 또한 본래 갖추고 있으나
우리가 해당 바라밀을 닦아야만 그것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에고를 닦는다는 것은 거칠게 육체적으로 보면
뇌의 신경회로를 그 작업에 최적화시키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도 작동할 수 있게 말입니다.

 

학당에서 6바라밀을 강조하는 것은
참나의 무한한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리 뇌에 선정 바라밀만 최적화시키지 마시고
다른 바라밀들도 최적화시키시라는 것입니다.
자동으로 그러한 능력들이 우리 에고를 통해 밖으로 온전히 드러나도록 말이죠.

 

만약 우리의 에고가 선정바라밀에만 최적화 되어 있다면
다른 바라밀을 닦고자 하는 의욕이 감퇴될 수도 있습니다.

 이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오직 선정만 닦는다면 마음이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게을러져서 선을 행하지 않고 큰 자비를 멀리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 (대승기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