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논어 강의] 배움과 익힘의 희열

1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2 벗이 있어 멀리서 방문하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3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라고 하셨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1-1)

 

 

 

 

1-1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1-1-1)

 

 

‘배움’(學)이란 남에게 학문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님의 배움은 

아무 학문이나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님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공(賜)아,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오직 ‘하나’로 꿰뚫었을 뿐이다(一以貫之).”

 

과연 공자님은 무엇을 가지고

‘하나’(一)로 꿰뚫었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양심良心’입니다.

‘성인聖人’이란 별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이 내려주신

우리의 순수한 마음인 ‘양심’(道心)을 온전히 복원하여,

하늘의 질서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일뿐입니다.

 

그러니 공자님께서 말씀하시듯

많이 배워서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양심’ 하나를 잘 밝혔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니 공자님의 ‘배움’(學)도

오직 ‘양심의 복원’에 관한 배움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이단異端’일 뿐입니다.

 

‘이단’이 다른 것이 아니라,

성인에 이를 수 없는 학문이 이단입니다.

‘이단異端’이란 단서(실마리)가 다른 학문이란 뜻입니다.

 

참나의 마음인 ‘양심’을 밝히는 학문과 

에고의 마음인 ‘인심’을 밝히는 학문은

전혀 그 단서가 다릅니다.

 

그러니 오직 인간의 이기적 욕망만을

부추기는 학문은 ‘이단’일 뿐입니다.

 

단순히 ‘내 주장’과 다르다고 ‘이단’이 아닙니다.

나와 남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정한 학문’이 아닌,

남의 불행을 무릅쓰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학문’이 바로 이단의 학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님께서는 [논어]에서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단異端’을 전공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심’을 온전히 밝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요?

 

방법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양심’을

온전히 복원하지 못하는 것은,

 

내면의 순수마음인 양심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고,

양심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서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내면의 순수마음 자리인

‘양심’을 깨달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양심을 자주 체험하다보면

양심의 뜻이 절로 이해가 될 것이며,

양심의 뜻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바로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배워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양심의 계발 정도’가 탁월한 사람

즉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도

배워야만 온전히 양심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천하의 모차르트라도 배워야

더 나은 음악을 작곡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중용中庸]에는 성인에 이르는 공부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성인聖人이 되려고 하는 자는

‘올바른 것’(善)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꽉 붙잡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은

① 널리 배우고(박학博學)

② 치밀하게 질문하며(심문審問)

③ 신중하게 생각하고(신사愼思)

④ 명확하게 분별하며(명변明辯)

⑤ 독실하게 행동하는 것(독행篤行)이다.

 

이 방법에 능숙해지기만 한다면

비록 지금은 어리석을지라도

반드시 밝아지게 될 것이며(양지의 확충) 

비록 지금은 나약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지게 될 것이다(양능의 확충).”

 

이를 [5단계 연구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① 먼저 양심을 밝힌 성현들에게 나아가

양심을 밝히는 법을 정확히 배우고(박학),

② 이렇게 얻은 정보가 과연 자명한 정보인지

치밀하게 검토해보고(심문),

③ 자명한 정보만을 추려 엮어서

하나의 이론 체계를 구성하여(신사),

④ 하나의 자명한 결론을 도출해야 합니다(명변).

 

⑤ 그리고 이렇게 이론적으로 자명한 이론을

실제 생활에 나아가 실천하여,

과연 그러한 이론이 정당한지 증명해야 합니다(독행).

이것이 공부의 정당한 순서입니다.

 

①~④의 과정을 통해 ‘올바른 개념’이 정립되고,

⑤의 과정을 통해서 ‘명확한 체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둘의 만남으로

‘자명한 지혜’가 완성됩니다.

 

‘참된 지혜’는 체험과 개념이 온전히 맞아 떨어져 
‘자명함’을 얻을 때 이루어지니까요.

 

우리가 ‘양심’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잡고

나아가 올바른 ‘체험’을 하게 된다면,

체험과 개념이 서로를 돌아보게 되어

한 점 의심이 없는 ‘자명한 앎’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근사록近思錄]에서 정자程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생각해서 답을 얻었을 때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며 만족스럽고 여유가 있다면

이것은 진실로 정답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생각하여 답을 얻긴 얻었으나

마음이 찜찜하고 답답하면

실제로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억지로 추측하였을 뿐이다.”

 

 

우리의 ‘양심’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집니다.
① 아는 마음인 ‘양지良知’과
② 하는 마음인 ‘양능良能’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4가지 양심인,  
① 남의 사정을 내 일처럼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②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③ 자신을 남보다 낮추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④ 옳고 그름을 가르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 중,

 

①~③은 실천하는 것이니 ‘양능良能’이며
④는 인식하는 것이니 ‘양지良知’입니다.

 

이상의 4가지 마음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춘 마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시비지심’ 즉 ‘양지’가 있습니다.

 

이 ‘양지’는 진실로 ‘자명한 진리’를 얻게 되면,
어떠한 의심도 일으키지 않으며
참을 수 없는 ‘양심의 희열’을 일으킵니다.
참을 수 없는 행복감과 충만감이 솟구치게 됩니다.
바로 이 맛에 ‘공부’를 하는 것이죠.

 

공자님께서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는 것은

이 [5단계 연구법]을 포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승에게서나 성현의 글에서 ‘양심을 밝히는 학문’을 배우고(①~④)

이를 수시로 익혀서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든다면(⑤),

 

‘개념’과 ‘체험’은 하나가 되어

‘자명함’을 갖추게 될 것이며,

 

‘본래의 양심’에 부합하는 ‘자명한 진리’는

우리의 ‘양심’을 훤히 밝혀줄 것이니.

참을 수 없는 양심의 희열이 심신을 쇄락하게 할 것입니다.

 

만약 학문을 하는데, 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릇된 공부를 하고 있거나,

공부가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