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나 마하르쉬의 <가르침의 핵심>

라마나 마하르쉬

라마나 마하르쉬

 

우빠데샤 사람(가르침의 핵심)

"우빠데샤 사람(가르침의 핵심)"은 시인 무루가나르가 쉬바의 가르침에 관한 시를 바가반(라마나 마하리쉬)에게 써주기를 요청함에 따라 바가반이 지은 것으로서, 아루나찰라에 있는 삼매지에서 베다와 함께 매일 찬송되고 있으며, 하나의 경전과 같이 다루어지고 있다.

1. 업(카르마-행위)은 열매를 맺으니,
주재자가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이네.
업이 어떻게 지고자일 수 있으랴?
그것은 활동력이 없다네.

2. 행위의 열매는 사라지지만,
그것은 계속 업의 씨앗을 남겨
끝없는 업의 바다로 이끄나니,
결코 해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네.

3. 주재자에게 순복하고 하는
사심없는 행위는,
마음을 정화하며, 해탈을 향한
길을 가리켜 준다네.

4. 확실한 것은,
예배와 염송과 명상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써 행하는 것이지만,
그 순서대로 나중 것이 낫다네.

5. 공, 지, 수, 화, 풍과
해와 달과 산 존재들을 숭배하되,
모두를 그분의 형상으로 보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숭배라네.

6. 찬양의 노래보다는 명호 염송이 낮고,
큰 소리로 하는 것보다는 나지막한 소리가 낫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은 것은
마음속으로 하는 명상이라네.

7. 끊어졌다 이어지는 명상보다,
면면한 물줄기같이 안정된
혹은 가만히 따르는 기름 줄기 같은,
지속적인 하나의 흐름이 더 낫다네.

8. 그분을 남으로 보기보다는
내면의 '나'로, 바로 '나' 자신으로
그분을 생각함이, 실로
가장 고귀한 마음가짐이라네.

9. 순수한 존재 안에 안주하여
열렬한 사랑을 통해 생각을 초월함이,
지고한 헌신의
가장 핵심이라네.

10. 우리가 일어난 곳인
존재의 심장(heart of being) 속으로 흡수됨이
행위의 길이요, 헌신의 길이며,
합일의 길이자, 지(知)의 길이라네.

11. 새가 그물에 걸려서 잡히듯,
마음도 호흡을 억제하면 제어되니
호흡조절(調息)을 하는 것은
심장 안에 몰입하는 한 방편이라네.

12. 마음과 호흡은
두 갈래로 뻗어 나가지만,
둘 다 하나의 뿌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네.

13. 몰입에 두 종류가 있으니,
가라앉음과 소멸이라네.
가라앉은 마음은 다시 일어나지만,
죽은 것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네.

14. 호흡을 제어하고 생각을 절제하여
내면을 향해 오로지
일념으로 된 마음은,
마침내 시들어 죽어 버린다네.

15. 마음이 사멸된 위대한 진인은
자기의 본래적 존재로 돌아가나니,
그에게는 더 이상 해야 할
아무런 행위가 없다네.

16. 바깥의 대상으로부터 물러나
마음이 그 자신의
빛나는 형상을 바라볼 때,
그것이 참된 지혜라네.

17. 마음이 자신의 형상을 끊임없이 살펴보면,
마음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누구에게나 이것이
직접적인 길이라네.

18. 생각들이야말로 마음을 구성하고,
모든 생각들 중에는 '나'라는 생각이 그 뿌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관념일 뿐이네.

19. 우리가 내면으로 돌아서서
이 '나'가 어디서 일어나는지 찾으면,
수치를 느낀 '나'는 사라지나니,
지(知)의 탐구는 이렇게 시작한다네.

20. 이 '나'라는 관념이 사라진 곳에
이제 '나, 나'로서 일어나는 것은
일자(the One)인 바로 진아(참나),
무한자라네.

21. '나'라는 말의 영원한 의미는 그것이니,
왜냐하면 우리가 깊은 잠 속에서
'나'라는 느낌이 전혀 없을 때에도,
우리는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기 때문이네.

22. 육체, 감각, 마음, 호흡, 잠 등은
모두 지각능력이 없고 실재하지 않아
실재인 '나',
이 '나'일 수가 없다네.

23. '존재하는 것'을 앎에 있어서
다른 '아는 자'란 없으니,
따라서 존재가 자각(Awareness)이며,
우리가 모두 자각이라네.

24. 그들 존재의 성품에 있어서
피조물과 창조주는 근본적으로 하나이니,
그들의 차이라면 단지
부수적인 것들과 지각(awareness)의 정도 차이뿐.

25. 일체의 속성을 벗어나서
‘자신’을 보는 것이 ‘하느님’을 보는 것,
왜냐하면 그분은 순수한 진아로서
항상 빛나고 있기 때문이라네.

26. 진아를 아는 것은 진아가 되는 것일 뿐이니,
왜냐하면 그것은 둘이 아닌 때문이네.
그러한 지(知) 안에서 우리는
그것으로 안주한다네.

27. 지(知)와 무지(無知) 둘 다를 뛰어넘는
그것이 참된 앎이니,
왜냐하면 순수한 지(知) 안에는
알려지는 대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네.

28. 자신의 성품을 알고 나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존재로서 우리는 안주하리,
끊임없는 의식-지복 속에서.

29. 속박과 해탈을 넘어서서
이 지복의 상태 안에 안주함이,
확고부동하게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라네.

30. 모든 에고가 사라지고 나서
그것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성장을 위해 좋은 고행이라고,
진아인 라마나는 이렇게 노래한다네.